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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다자간 무역협상의 발전

by BrandStory 2022.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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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TT의 주요 관심 대상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관세의 문제였다. 엄청나게 높은 관세율이야말로 무역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관세율의 인하는 GATT의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적어도 1970년대까지 그 노력은 어느 정도 결실을 거두었다. 그런데 이 결실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무역기구가 아닌 단순히 ‘협정’에 불과한 GATT가 적어도 30년 이상 자유무역 실현에 있어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은 GATT가 수행한 역할에 열쇠가 있다. 즉, GATT는 결국 설립이 무산된 ITO(국제무역기구)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대신 수행하면서 ‘협상의 장’으로서의 구실을 톡톡히 해냈기 때문이다.

GATT는 1947년 처음으로 무역협상의 장을 펼쳐놓았다. 그것은 GATT의 다자주의원칙에 입각하여, 말 그대로 다자가(23개국)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사실상 유일한 의제는 관세인하, 이 협상에서 GATT는 4만 5천 품목의 관세를 양허했다. 2차 다자간 무역협상은 프랑스의 엔시에서 32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역시 의제는 관세문제였고 이 협상에서는 5천 품목에 대한 관세 양허가 이뤄졌다. 3차협상은 한국이 전쟁중이던 1950년 9월 영국 폴키에서 열렸고, 8799품목의 관세가 양허되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1956년 1월에 열렸던 4차 다자간 무역협상에서는 3천품목의 관세가 양허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1961년 5월 처음으로 라운드라는 용어가 사용된 5차 다자간 무역협상, 딜론라운드에선 4천 4백 품목이 양허되었다. 어쨌든 이때까지의 다자간 무역협상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주로 관세인하의 의제만 다루어졌다. 그리하여 한편에서는 자유무역의 전성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 표면적으로 보기에 각국의 교역량은 꾸준히 증대했고, 그러므로 애초에 기대했던 ‘자유무역의 기조유지’라는 역할에 있어서

다자간 무역협상은 성공적인 역할을 수행한 샘이었다. 그러나 다자간 무역협상의 이러한 평가 이면에는 무시할 수 없는 미국의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섯 차례의 다자간 무역협상이 벌어졌던 1947년부터 1960년대 초반의 세계 경제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세계 각국은 지극히 몇몇 나라만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전후 복구 사업에 여념이 없었으며, 이것과 무관한 나라일지라도 산업시설의 부족으로 세계 무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만한 생산력을 가진 나라가 없었다. 오직 미국만이 그런 능력이 있었다. 미국은 엄청난 생산력을 바탕으로 세계 무역구조를 이끌어갔다. 그들은 자국의 상품을 추출하는 동시에 또한 그에 버금가는 양의 원조를 세계 각국에 감행했다. 그리하여 1950-1953년 사이의 기간에 미국이 세계에 뿌린 원조금액은 군사원조까지 포함하여 수출 총액을 능가하는 기현상을 빚기도 했다. 바로 이것이 당시 세계 무역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나라는 미국의 막대한 원조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이 기간 동안은 여전히 국제수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하여 자국의 산업을 보호 육성하기 위해 수입할당제, 외환관리, 이중가격제들의 보호정책을 강구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미국의 원조를 막지 못했다. 세계 각국은 여전히 산업개발의 필요성이 절실한 때였고, 느즈막히 시작된 공업육성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필품 부족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을 우방으로 하는 자본주의 국가 대다수는 미국의 군사원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거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이 미국의 대량 수출을 실질적으로 가능케 했던 요인이었다. 그러므로 표면적으로 보자면 미국 상품의 막대한 이동에 힘입어 이 기간 사이의 세계무역은 거의 장벽없이-왜냐하면 원조를 마다할 국가는 없었으니까-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다. 다시 말하자면 5차까지의 다자간 무역협상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이 기간 동안의 무역기조는 미국이라는 한 나라에 의해 유지되었고 당연히 다자간 무역협상의 노력은 무의미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은 구태여 GATT에 의존하지 않고도 무역의 판도를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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